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문단 편집) === 긍정적 평가 === 영화의 메세지는 '지루한 일상을 탈출해 모험을 떠나라!'가 아니다. 물론 모험이란 요소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월터의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긴 하다. 하지만 모험이 월터의 종착점이 아니다. '무미 건조한 일상을 상상으로 채워 실현케 하라!'도 아니다. 영화 중반부터 상상의 힘이 월터를 도우지만 영화 초반에서 '상상 멍때리기'는 월터를 우습게 만들고 곤란에 빠뜨리기도 하는 현실과의 단절, 도피였다. 영화가 보여주는 뚜렷한 메세지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는 것으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지금 현재 하는 일이 꿈꾸던 삶이었는지 모르겠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는데도 삶의 무게와 관성에 밀려 살아가고 그럼에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경의를 표한다. 1%의 빛나는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상이지만 99%의 평범한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그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월터를 통해 되새긴다. 지금 순간을 살라는 메세지의 작품은 이전에도 많았고 진부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가 너무 명백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과 장치들이 익숙하며 뻔한 구석도 있어 낮은 평가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를 표현함에 다소 직설적이지만 위선적인 시선이 느껴지지 않고, 표적을 향해 날린 화살이 똑바로 날아가 정확히 명중하여 메세지를 전하는 영화의 진심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터의 짝사랑 셰릴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라이프지에 입사했다고 월터에게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고 선망의 영역일 수 있는 라이프지라는 무대에서 월터는 무미건조한 16년을 보냈다.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지만 삶에 치이고 생계를 해결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느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작아진 남자.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관성 때문인지 자신감도 없고 자신을 온전히 내보이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내지도 못한다.[* 아이슬란드의 피자 체인 '파파존스'에서 '파파'라는 단어를 보고 불편해져 가게를 나온다. 어릴 적 아버지가 죽고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파파존스 알바인데 어머니는 가게 이름의 파파라는 단어에 월터가 아버지를 떠올리고 상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월터는 아버지를 파파라고 부른 적이 없어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보여진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필요한 현실의 순간을 놓치면서도 상상 혹은 망상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월터의 상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종종 끊긴다는 감상은 맞는 말이다. 영화 초반 월터의 상상은 자신을 내보이지 못하는 소심함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하는 역할, 장치, 도구, 함정이다. 그러니 현실과 단절되고 그로 인해 곤란에 빠지고 중요한 사실을 챙기지 못하고 지나친다. '상상 멍때리기'로 현실의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바로 숀을 찾을 수 있었을테고, 셰릴이 냉장고 수리 때문에 전 남편을 만나게 되는 것을 알아 쓸데없는 오해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상상의 역할 때문에 영화에서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는 대신 드라마의 흐름을 딱딱 끊어버린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멈추고 완전히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공상의 영역이다. 그런 상상이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지점이 숀 오코넬이 사진 속에서 손짓으로 월터에게 찾아오라는 메세지를 주는 장면과 술집에서 셰릴이 나타나 노래를 불러 월터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장면이다. 현실과 단절된 상상의 세계로 월터가 가는 것이 아닌 월터가 존재하는 현실에 상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상상이 월터가 모험으로 떠나는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단절, 도피의 도구가 아닌 도움닫기의 발판이 되어준다. 그리고 영화 중후반부터 현실이 상상을 압도하는 풍광을 보여주면서 상상은 줄어들고 온전히 현실을 바라보는 월터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겹쳐진다. 월터가 25번 사진을 찾아 떠나는 모험은 16년간 공동 작업을 해왔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한 숀 오코넬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숀은 영화 처음에서 보여진 셰릴의 'e-하모니' 이상형란에 기재된 '모험심, 배짱, 독창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평범함, 소심함, 책임감'의 상징하는 월터가 그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통해 모험심, 배짱, 독창성을 자신에게 채워나간다. 하지만 갖지 않은 새로움으로 자신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졌지만 잊고 있던 과거를 다시 일깨우고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여정이다.[* 월터가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란 설정도 아직 인화되지 않은 사진 필름이지만 가능성, 잠재력을 가졌다는 표현이다.]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이 아이슬란드의 스케이트 활강 장면이다. 어릴 적 모히칸 머리로 스케이트를 타며 대회를 휩쓸었지만 아버지의 부재 이후 멀어진 스케이트 보드를 다시 타고 아름다운 풍광을 가르며 긴 내리막을 활강하는 장면은 꿈꾸며 약동하던 어린 시절의 힘을 일깨우고 되찾는 장면이다. 그렇게 진정한 자신을 찾은 후에 시련이 찾아온다. 화산 폭발, 직장에서의 해고, 짝사랑하는 여인과의 멀어짐 등 전방위적으로 들어오는 삶의 압박으로 여정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월터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상상으로 도피하길 스스로 거부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은 후에 바로 이어지는 시련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입장료이자 관문과도 같은 것일터. 잠시 주저앉은 월터였지만 이내 추스르고 끝내지 못한 여정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히말라야로 떠난다. 아이슬란드까지의 여정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었다면 히말라야로 떠난 모험은 '진정한 자신'을 성장시키는 여정이다. 눈표범을 찍기 위해 히말라야로 향한 숀을 쫓아 히말라야까지 찾아간 월터는 드디어 숀을 만난다. 눈표범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 '유령 표범'이라고 불리운다. 실재하지만 만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유령 표범. 그 유령 표범을 찍기 위해 기다리던 숀은 월터와 만나 대화 중 유령 표범의 피사체를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마주친 순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갖는다. 25번 사진의 향방을 묻는 월터에게 그건 이미 자네가 갖고 있다며 자신이 선물한 지갑 안을 살피라고 한다. 하지만 월터는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후 시련에 멍해질 때 지갑을 버렸다. 25번 사진을 못 찾게 되자 궁금함에 사진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월터의 질문에 "유령 표범처럼 아름다운 것, 월터 미티!"라고 대답하고 축구하러 가버린다.[* 원문은 "Let's just call the Ghost Cat, Walter Mitty!"로 유령 표범이라고 해두지, 월터씨!와 유령 표범, 월터 미티라고 해두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는다. 문맥상 숀은 후자의 의미로 말한 것.] 그리고 드넓은 산맥 사이로 아름다운 석양이 펼쳐지는 가운데 사람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고서 모험을 마친다. 집으로 돌아온 월터는 이제 진정 성숙한 어른이다. 자신의 아픈 과거[* 모험으로 인한 지출로 인해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이유도 있지만 영화 초반엔 무리를 해서라도 지키려했던 아버지의 유품인 피아노를 팔았다. 아쉬움과 슬픔보다 이를 통해 가족간의 유대감은 깊어진다.]를 극복하고 상상이 아닌 현실을 마주하며 우뚝 선다. 그런 후에 선물처럼 찾게 된 25번 사진을 가지고 라이프지 회사로 향한다. 'The End of Life'라는 끔찍한 폐간호 커버를 준비하던 회의실로 들어간 월터는 25번 사진을 건내고 자신을 해고한 테드와 마주한다. 그리고 테드에게 묻는다. "라이프지의 모토가 뭔지 아나요?" - 우물쭈물하며 맥도날드의 구호를 중얼거리는 테드에게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라이프지의 직원들은 (당신이 모르는) 그 모토를 믿고 헌신해온 사람들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당신의 역할은 이해하지만 다음부턴 그렇게 재수없게 굴지는 말라'는 일침을 놔준다. 이 장면에서 월터는 자신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보여주고, 월터 자신과 라이프지의 자부심, 긍지, 명예를 회복한다. 자신을 우습게 여겨 해고까지 시킨 불편하고 어려운 상사 테드에 맞서 분노를 터트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저열함이 아닌 차분하고 소신있는 발언으로 상대를 [[참교육]]시키는 고상함을 보인다. 영화 초중반 테드와 도심을 가로지르며 [[어벤져스(영화)|어벤져스]]급 전투를 펼치던 상상보다도 훨씬 놀라운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라 가능해보이는 가장 판타지한 장면이다. 월터가 떠올리는 상상들은 그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보통 사람들이라면 해봤을 상상들이다. 멋진 모험을 떠나거나, 짝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거나, 미친 상사에게 핵펀치를 날리거나 하는 상상들은 안 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월터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상상과 모험의 힘으로 자신을 끌어올려 성장했고 상사에게 핵펀치가 아닌 뜻깊은 말로 참교육한다. 자신의 자긍심, 자부심을 되찾고 상대에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마저 주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몽상가가 모험가가 되는 건 쉽다. 그냥 길을 떠나면 모험가가 된다. 하지만 몽상가가 현명한 자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보통은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몽상가는 다시 몽상가로 돌아간다.[* 영화상에서 월터도 그런 지점이 있었다.] 월터는 몽상가에서 모험가로 길을 나선 후 현명한 자가 되어 돌아왔다. 용기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도약하고 그 고결함을 보여준 저 장면이야말로 가장 영화적이며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새로운 구직 활동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하고 훑어보며 월터는 상념에 잠긴다. 16년간의 성실한 직장 생활과 2주간의 판타스틱한 모험 이야기를 이력서에 써넣었는데 2주간의 모험 이야기가 분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채운다. 월터와 관객은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할까, 16년간의 평범한 삶이 겨우 2주간의 모험에 압도되는 겨우 그저그런 시간이라고? 그렇지 않다. 2주간의 그 찬란했던 시간은 16년의 세월 또한 찬란한 아름다움이었음을 알게 해준 행운이었다. 그러던 중 셰릴의 아들 리치에게서 온 동영상 메일을 확인한다. 리치가 자신이 선보였던 스케이트 묘기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이 메일을 통해 아직 월터와 셰릴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보인다. 퇴직금을 수령받기 위해 라이프지 회사로 간 월터는 퇴직금을 정산받고 건물을 나서던 길에 셰릴을 목격한다. 예전의 월터였다면 말은 걸지 못하고 상상으로 떠나갔겠지만 지금의 성숙한 월터는 셰릴을 쫓아가 돌려 세운다. 반가운 재회를 나눈 후 진솔하고 담담하게 셰릴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며 자신의 여정에 당신이 큰 용기를 주었다는 고백을 한다. 셰릴에게 데이트 승낙까지 받고 둘이 함께 돌아가는 길, 가판대에 진열된 라이프의 폐간호를 통해 드디어 25번째 사진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 사진에는 라이프지 회사 건물 앞에서 네거티브 필름을 검수하며 열중하는 월터의 모습이 담겼다. 숀이 '''The Quintessence of life'''라고 직접 골라 쓴 단어는 '삶의 정수'와 '삶의 본질'을 뜻하고 또한 잡지 라이프의 정수, 본질을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라이프지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경의와 헌사의 뜻을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월터의 모습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아가 평범함 속에 가려 그 실재의 아름다움, 유령 표범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야를 한뼘 넓혀준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은 월터가 지금껏 살아온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을 떠나 실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이 두 다리를 딛고 있는 현실에 분명 실재하는 아름다움을 찾길 영화는 응원해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